
새 학기가 시작되면 영아들은 낯선 공간과 낯선 얼굴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립니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고 비언어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영아에게 '친구'라는 개념은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실 벽에 붙은 친구 사진 한 장이 작은 손가락 하나를 이끌어 그 거리를 좁혀 주기도 합니다.
사진 탐색 : 친구 얼굴을 처음 만나는 순간
영아는 언어보다 감각과 시각 이미지로 세상을 먼저 이해합니다. 교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놀이주제를 선정하는 철학 중 하나는 아이들의 실제 관심과 삶에서 주제가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에서도 '아이의 백 가지 언어' 중 하나로 이미지와 사진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영아에게 친구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관계의 씨앗입니다.
새 학기 3월, 담임교사로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면서 비언어적인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영아에게 과연 친구 놀이가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유아보다 발달이 앞서 있지 않은 영아의 경우,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내용 범주는 동일하게 적용되더라도 그 깊이와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선택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바로 우리 반 아이들의 사진을 교실 벽에 게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름과 얼굴을 빨리 익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환경 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아들이 사진 앞에 멈춰 서서 관심 있는 친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탐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언어로 "저 친구 이름이 뭐야?"라고 묻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아의 비언어적 표현이며, 동시에 관계 탐색의 시작점입니다.
놀이중심 보육과정에서 교사의 기록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사진을 탐색하는 그 순간을 사진과 메모로 기록해 두는 것은 단순한 관찰 일지가 아닙니다. 그것인 이후 놀이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증거가 됩니다. 교사가 그 몸짓을 포착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이 놀이는 단발성 반응으로 끝나지 않고 친구 놀이라는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의 기록은 아이들의 기록이자 교사의 성찰이며, 다음 활동을 설계하는 지도입니다.
얼굴 꾸미기 : 감각으로 친구를 표현하는 놀이
사진 탐색이 친구를 인식하는 단계라면, 얼굴 꾸미기는 친구에 대한 감정을 몸과 손으로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영아는 추상적 개념보다 구체적인 사물과 직접적인 감각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과자, 색종이 조각, 자연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친구 얼굴 사진을 꾸미는 활동은 영아의 발달 수준에 정확히 맞닿아 있는 창의적 표현 활동입니다.
이번 친구 주제 놀이에서는 예술 경험 영역이 다양한 놀이로 나타났습니다. 내 친구를 그려보기, 친구 머리카락을 다양한 재료로 표현하기, 크레파스를 문질러 색깔 만들기 등 예술 경험 영역의 창의적 표현이 풍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영아반에서 재료의 종류와 과정을 더욱 단순화하고 감각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과자로 친구 얼굴을 꾸미는 활동은 촉각, 시각, 미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매우 풍부한 감각 경험입니다. 영아는 손으로 재료를 만지고, 눌러보고, 때로는 입에 넣어 보면서 재료의 성질을 탐색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탐구 활동이며, 동시에 창의적 표현입니다. 색종이 조각을 찢어 붙이는 활동 역시 소근육 발달을 자연스럽게 자극하면서도 친구라는 주제 안에서 의미 있는 표현으로 연결됩니다. 교사는 이 과정에서 어떤 친구의 사진을 골랐는지, 어떤 재료를 선택했는지, 얼마나 집중해서 탐색했는지를 기록합니다. 이 기록을 통해 영아의 사회적 관계 형성 과정이 가시화됩니다.
누리과정과 표준보육과정 모두 '더불어 생활하기'와 '나를 알고 존중하기'를 사회 관계 영역의 핵심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아가 친구 사진을 골라 정성스럽게 꾸미는 행위는 바로 그 내용 범주를 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말로 "너 좋아."라고 표현하지 못해도, 과자 한 조각을 친구 얼굴 위에 올려놓는 손길이 이미 충분한 언어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영아의 행동 안에도 이미 타인을 향한 관심과 감정이 싹트고 있습니다. 교사가 그 싹을 알아보고 환경으로 응답할 때 놀이는 시작됩니다.
끼적이기 : 투명 필름 위에서 펼쳐지는 관계의 첫 언어
끼적이기는 영아기의 가장 자연스러운 쓰기 전 표현 활동입니다. 표준보육과정에서 의사소통 영역의 쓰기에 관심 가지기 내용 범주는 영아가 끼적이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경험을 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친구 사진 위에 투명 필름을 올려놓고 자유롭게 끼적이는 활동은 이 내용 범주를 친구라는 주제와 절묘하게 연결합니다.
유아반에서는 언어 영역의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한 활동이 가능하지만, 영아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이전 단계인 끼적이기가 가장 적합한 언어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끼적이기를 단순한 낙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영아가 친구 얼굴 위에 올린 투명 필름 위에서 무언가를 끼적이는 행위는 그 친구를 향한 관심과 주의의 물리적 표현입니다.
투명 필름이라는 재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한 선택입니다. 첫째, 사진이 필름 아래에서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영아는 친구 얼굴을 보면서 동시에 자신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필름은 지우고 다시 할 수 있는 가역성을 가지므로 영아가 부담 없이 반복적으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필름 위의 끼적이기 결과물은 전시하거나 포트폴리오로 남기기에 적합합니다.
놀이중심 보육과정에서 교사는 교육자(Educator)이자 촉진자(Facilitator)이며,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아이의 놀이가 어디서 왔는지를 읽어내고 그것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환경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게시한 것이 탐색으로 이어지고, 탐색이 꾸미기로 확장되고, 꾸미기가 끼적이기로 연결된 이 흐름은 교사의 세심한 관찰과 적절한 재료 제공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인 순간, 교사가 그 신호를 읽고 다음 경험을 설계합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가정과의 연계를 도모하거나, 부모님께 아이가 관심 있는 친구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접근입니다.
새 학기 3월, 영아에게 친구 놀이가 가능할까라는 고민은 틀린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친구 놀이의 형태가 달라야 했습니다. 말이 아닌 손가락으로, 언어가 아닌 과자 한 조각으로, 문장이 아닌 끼적이기로 시작하는 친구 관계는 영아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진짜입니다. 사진 탐색에서 얼굴 꾸미기로, 꾸미기에서 끼적이기로 이어진 이 놀이의 흐름은 아이가 먼저 보여 준 신호였고, 교사는 그것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