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핑 놀이는 유아반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아이들이 캠핑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놀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쭉쭉 뻗어나갔습니다. 그 과정을 그대로 기록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영아의 발달 수준에 맞춘 캠핑 놀이 환경 구성
영아들에게 캠핑 놀이를 처음 제안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아이들이 이미 상당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캠핑을 가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텐트에서 자야 한다는 것,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까지 꽤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아이들의 사전 경험이 놀이의 깊이를 결정짓는 데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환경 구성은 최대한 단순하게 시작했습니다. 포아트 블록 두 개를 기둥 삼아 그 위에 광목천을 올려 텐트 공간을 만들었고, 다이소에서 구입한 작은 그릴과 캠핑 소품 몇 가지를 추가했습니다. 여기에 큰 광목천을 천장에 달아 타프(tarp)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타프란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해 텐트 외부에 치는 차양 구조물을 말하는데, 이 장치 하나만으로도 교실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벽난로는 벽돌 블록을 쌓아 만들고, 안쪽에 두꺼운 백업 소재로 장작을 표현한 뒤 붉은 한지와 LED 촛불을 넣었습니다. 여기서 LED 촛불이란 실제 불꽃 없이 빛을 내는 안전한 전자 조명 소품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마시멜로우를 이 불빛에 구워 먹는 흉내를 내면서 몰입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백업 소재란 스티로폼처럼 가볍고 형태를 만들기 쉬운 발포 재질로, 영아들이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재료입니다.
만 2세 영아들의 놀이 특성상 반복 놀이(repetitive play)가 많이 나타납니다. 반복 놀이란 같은 동작이나 놀이 주제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며 즐기는 영아기 특유의 놀이 방식으로, 이를 통해 아이들은 개념을 내면화하고 자신감을 키웁니다. 실제로 캠핑 놀이를 한참 즐기던 아이들이 벽돌 블록을 보더니 갑자기 "집 짓는다"며 벽돌 쌓기를 시작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아기돼지 삼 형제 역할놀이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의도한 확장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낸 흐름이었습니다. 한동안 캠핑 놀이와 아기돼지 삼 형제 놀이를 번갈아가며 즐기는 모습이 이어졌고, 저는 이 흐름을 막지 않고 아기돼지 삼 형제 놀이를 공식 주제로 추가했습니다.
영아들의 놀이에서 핵심은 환경이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래는 제가 실제로 구성한 환경 요소들입니다.
- 포아트 블록 기둥 + 광목천 텐트
- 다이소 그릴과 캠핑 소품 (총 1만 원 내외)
- 벽돌 블록 + 백업 장작 + 한지 + LED 촛불 벽난로
- 천장 광목천 타프
- 백업 마시멜로우·소시지·꼬치류 등 음식 소품
- 유튜브 불멍 영상 + 자연 효과음(장작 타는 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놀이 확장과 공간 확장이 만들어낸 뜻밖의 결과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캠핑 놀이가 활발해지면서 교실이 좁아지기 시작했고, 저는 처음에 그냥 책상을 밀어서 공간을 확보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영아 놀이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놀이 환경 구성(play environment design)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의 놀이 행동이 물리적 공간의 구조와 크기에 따라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원리를 말합니다. 저는 결국 유희실을 개방하기로 결정했고, 이 선택이 생각지도 못한 연결을 만들어냈습니다. 유희실은 공동 공간이다 보니 다른 반의 협조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반 아이들을 우리 반 캠핑에 초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사회관계 발달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 셈입니다.
여기서 사회관계 발달이란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 배려,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가는 발달 영역을 말합니다. 만 2세 시기에는 아직 병행 놀이(parallel play), 즉 같은 공간에서 놀지만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적은 형태가 주를 이루는데, 다른 반 친구들과 섞이면서 조금씩 협동 놀이로 이행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제가 직접 지켜본 장면이라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저는 캠핑 놀이가 실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공간의 경계를 정해두고 하는 것보다 공간이 유연하게 열려 있을 때 훨씬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바깥 놀이 시간에 캠핑용품과 돗자리를 챙겨서 나갔습니다. 실외로 나간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교실에서 하던 그 놀이를 바깥에서 다시 하는데 몰입도가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습니다. 영유아 발달 연구에서도 자연환경이 영아의 감각 발달과 정서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부모님 반응도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아이들이 하원 후 집에서도 캠핑 놀이 이야기를 꺼내고, 주말에 진짜 캠핑을 가고 싶다고 졸랐다는 이야기를 여러 분께 들었습니다. 놀이가 교실을 넘어 가정으로, 가정에서 다시 실제 경험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생긴 것입니다. 누리과정에서 강조하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의 핵심이 바로 이런 연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리과정이란 만 3세부터 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지만, 그 정신은 만 2세 영아 보육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포털).
캠핑 놀이 하나가 역할놀이, 블록 쌓기, 동화 연계 활동, 실외 놀이, 사회관계 활동으로 뻗어나가는 걸 직접 보고 나서 저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재미있으면 스스로 확장합니다. 교사가 할 일은 그 흐름을 막지 않고, 공간과 소품으로 살짝 문을 더 열어주는 것이라는 것을요. 만 2세 영아와 캠핑 놀이를 고민 중이신 선생님이라면, 일단 텐트 공간 하나만 만들어 시작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다음은 아이들이 알아서 만들어갑니다.